• [훈정회 소장도서 소개]선종영가집(禪宗永嘉集)
  • 당나라 현각선사가 선종의 요결과 깨달음을 찬술한 책


  • 훈민정음기념사업회 소장본《선종영가집》(禪宗永嘉集)은 형태 서지학적으로 살펴보면, 표지는 개장하여 판식은 5침안정법으로 제책하였고 크기는 30cm×20cm이며 2권 1책의 선장본이다. 유계(有界), 8行 18字, 대흑구(大黑口), 상하(上下) 흑어미(黑魚尾)이다. 권상(卷上)과 권하(卷下)의 판심체는 각각 ‘영가집권상(永嘉集卷上)’, ‘영가집권하(永嘉集卷下)’로 되어 있다. 

    표지를 넘기면 바로 이어서 상권(上卷)이 시작하는데, 판심 아래쪽에 해당 장차(張次)가 표기되어 있으며, 상권은 ‘장일(張一)’부터 시작하여 ‘장백십팔(張百十八)’로 끝나 118張으로 구성되어 있다. 

    하권(下卷)은 ‘張一’부터 시작하여 ‘장백사십구(張百四十九)’로 149장이며 149장 이하 판심체는 ‘영가집 송설의(永嘉集 頌說義)’로 되어 있는 12장이 있고 이어서 판심체가 ‘영가집발(永嘉集跋)’이라고 되어 있는 4장이 있다. 


    발문 말미에는 천순칠년십일월 일(天順七年十一月 日) 효령대군 신 보근 발(孝寧大君 臣 補謹 跋)이라는 간기가 있어서 이 책이 1463년에 간행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 책은 효령대군과 신미대사가 동시 발문을 한 것으로 국내에서 발견된 선종영가집 후기본에는 신미대사 발문이 빠져있다.

    특징적인 것으로는 태동고전연구소 청명 임창순(靑溟 任昌淳)교수로부터 1999년 이전에 구입했다는 쪽지가 책갈피 사이에 끼워져 있고, 하권의 표제에 청명제(靑溟題)라고 쓰고 낙관을 하였다.

    『선종영가집』은 당나라 현각선사(玄覺禪師 647∼713)가 선종의 요결과 깨달은 것을 찬술한 책이며 그가 죽은 뒤 당나라 경주자사인 위정이 모아 입지로부터 수선 요결에 이르기까지 10문으로 나누어 편집한 것이다. 또한 송나라 용산 석벽사문 행정이 주를 달고, 진수사문(晉水沙門) 정원(淨源 1011~1088 : 중국 북송 시대의 화엄종 스님으로 천주 진강현 출신이었으므로 진수 사문이라는 별칭이 붙었다. 항주의 혜인사(慧因寺)에 주석하면서 고려에서 유학 온 대각 국사 의천(1055~1101)에게 강론하였다. 이 수정과(修定科)하고, 고려말 조선초에 승려로 활약한 함허당 득통 기화(1376~1433)가 설의한 수행 지침도서이다. 이 책은 송과 원에서 두 차례 간행되었는데, 그것이 고려에 도입되어 1381년(우왕 7년)에 간행되었다. 

    『선종영가집언해』는 당나라 영가대사 현각의 <선종영가집>에 송나라 행정(行靖)이 주를 달고, 정원이 과문(科文)을 수정한 것을 언해한 책이다. 이 책에 세조가 언문으로 구결을 달고, 신미, 효령대군 보(補) 등이 번역을 하여 간행하였다. 상하 2권 2책의 목판본으로, 권두 및 권말 서명은 ‘선종영가집’이고, 판심서명은 ‘영가집’이다. 책 번역에 관련된 내용은 중간본 중 하권 권말에 첨부되어 있는 신미와 효령대군 작성의 ‘영가집발(永嘉集跋)’을 통해 알 수 있다. 그런데 발문이 편철되어 있는 현전의 책은 드문 편이다. 

    영가대사는 중국 절강성의 온주부 영가현 출신으로 속성은 대(戴)씨이고, 법명은 현각, 자는 명도(明道), 호는 진각(眞覺)이다. 8세에 출가하여 나중에 육조 혜능의 법제자가 되었다. 경(經)과 논(論)을 주로 연구하였으며, 특히 천태지관(天台止觀)에 정통했다고 한다. 온주 용흥사에 주석하여 <증도가>와 <관심십문> 등의 저서를 남겼다. 49세에 입적하였고 시호는 무상대사(無相大師)이다. 생몰연대는 665~713년이다.


    『선종영가집언해』의 언해 체제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행관(行款)은 매면 유계 8행, 매행의 글자 수는 19자이다. 다만 과주(科注)는 구결문과 언해문 모두 행의 처음에서 한 글자 내려 시작하여 18자가 된다. 언해는 원문 구결문을 먼저 보이고, 그 다음에 언해문을 두었는데 본문 및 과주 구결문은 1행 1줄, 언해문은 1행 2줄이다. 본문 및 과주에 현토한 언문 구결은 작은 글자 1행 2줄이다. 본문은 큰 글자로 행의 처음 위치에서 시작하여 1행 19자이고, 본문의 언해문은 작은 글자 2행인데, 본문 구결문이 끝나면 원권(圓圈) 표시를 하고 바로 그 밑에 언해문을 두었다. 과주 구결문은 중간 글자로 본문보다 한 글자 내려서 시작하였다. 역시 구결문의 끝에 원권 표시를 하고, 바로 밑에 작은 글자 2행으로 언해문을 두었다. 

    본문은 물론 과주의 경우에도 구결이 달린 원문의 한자에는 언문 주음을 두지 않았으나, 언해문의 한자에는 모두 언문 주음을 두었다. 언문 구결이 달린 본문의 한자 표기는 큰 글자, 과주의 한자 표기는 중간 글자이고, 언해문의 한자 및 한자음 표기는 언해문의 언문 글자와 동일하게 작은 글자를 썼다. 

    <선종영가집언해>는 1472년(성종 3년)에 김수온이 원간본의 책판을 이용하여 다시 인출한 바 있고, 1495년(연산군 1년)에는 학조(學祖)가 그렇게 했다. 그 책들의 경우에는 권말에 각각의 발문을 두어 그러한 사정을 밝혔다. 

    『선종영가집 언해』는 세조가 직접 언문으로 구결을 달고 신미대사와 효령대군이 발문을 집필했다. 
  • 글쓴날 : [23-08-30 10:46]
    • 김신근 기자[ms0818j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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