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특집] 사단법인 훈민정음기념사업회 소장 도서 소개
  • 운서의 대전(大全)이며 학자의 지침서인 「고금운회거요(古今韻曾擧要)」

  •  「민법」 제32조 및 「문화체육관광부 및 문화재청 소관 비영리법인의 설립 및 감독에 관한 규칙」 제4조에 따라 2021년 2월 25일 문화체육관광부 소관 비영리법인 제2021-0007호로 설립된 사단법인 훈민정음기념사업회는 전적박물관(관장 최형석)이 제공한 보물과 동일본인 도서 중에서 훈민정음과 관련이 깊은 도서를 몇 회에 걸쳐 한문교육학박사인 사단법인 훈민정음기념사업회 박재성 이사장의 해설을 곁들여 소개한다. <편집부> 


    개요

    「고금 운회 거요(古今韻會擧要)」는 원나라 초기 황공소(黃公紹)가 편집한 운서 「고금 운회(古今韻會)」(1292 이전)을 그의 제자 웅충(熊忠)이 요점을 열거[거요(擧要)]하고, 주석을 첨가하여 30권 10책으로 1297년에 「고금 운회 거요」라는 이름으로 간행한 운서로 줄여서 「운회(韻會)」라고도 한다.

    이 「고금 운회 거요」는 운서의 대전(大全)이며 학자의 지침서로서 송(宋) 이후의 중국음운(中國音韻) 변화를 잘 반영하고 있다. 

    형식상으로는 유연(劉淵, ?~310년)이 임자년(1252)에 새롭게 간행한 <임자신간예부운략(任子新刊禮部韻略)>의 107성운에 따라 표제자를 나누어 7음, 4등, 36자모의 순서에 따라 배열하였는데, 실제로 운(韻)과 성(聲)을 분류할 때에는 당시의 음을 기준으로 하고 있으나, 실지로는 당시의 음운 체계를 고려하여 배열하고 있는데 몽고 자운(蒙古字韻)과 매우 흡사하다. 

    이것이 이른바 자모운(字母韻)인데 각 운 안에서 한자(漢字) 배열도 한도소(韓道昭)의 <오음집운(五音集韻)>(1211)을 본보기로 하여 36자모순으로 하고 있으며, 고려 중기 과거가 실시된 이후에 사용되었다. 

    1432년 경상도 관찰 출척사로 부임한 신인손(辛引孫)이 「고금 운회 거요」를 간행하기 위하여 도내에서 구했으나, 소장자가 없자, 이듬해 왕[세종]에게 보고하였더니, 경연(經筵)에 소장되어 있던 「고금 운회 거요」 2부를 내려주었다. 

    신인손은 이 책을 경주부와 밀양부에 나누어 보내어 도사(都事) 박근(朴根), 경주부윤 김을신(金乙辛), 밀양부사 임종선(任從善) 이하 여러 관리가 관여하였고, 판각에 있어서는 대선사(大禪師) 홍조(洪照) 이하 20명의 승려와 전 서승(署丞) 이종생(李從生) 등 총 109인을 동원하여 이 책을 저본으로 삼아 목판으로 판각하게 하여 5개월이 걸려 1434년(세종 16년)에  「고금 운회 거요」를 밀양에서 30권 10책(또는 12책) 목판본으로 번각되었고 1593년에도 간행되었다.  

    이 「고금 운회 거요」는 4권 1책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1993년에 보물 제1158호로 지정되었다. 1573년(선조 6년)에 중간되었으며, 웅충(熊忠)의 자서는 없고 이식(李植)의 발문이 있는 판본도 있다.

    훈민정음과의 관계

    《세종 실록》 1444년(세종 26년) 2월 16일자의 내용에 따르면 세종은 집현전 학사들과 수양 대군(首陽大君, 1417년~1468년), 안평대군(安平大君, 1418년~1453년)에게 새로 만든 문자인 언문 즉 훈민정음으로 「운회(韻會)」를 번역할 것을 명령했던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세종은 당시에 널리 사용했던 원나라 사람 웅충(熊忠)이 엮은 「고금 운회 거요(古今韻曾擧要)」(1297)에 수록된 한자들의 음을 훈민정음으로 표기하도록 하였으나, 이 작업이 완성되었다는 기록은 찾아볼 수 없다. 

    한편 최세진은 운서 「고금 운회 거요」의 색인처럼 사용할 수 있는 옥편인 「운회 옥편(韻會玉篇)」을 1537년 12월 이후에 펴냈다.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된 보물

    1993년 4월 27일 문화재청에 의해 보물(제1158호)로 지정되어 국립중앙박물관(서울특별시 용산구 서빙고로 137)에 소장되어 있는 <고금운회거요>는 권27, 권28, 권29, 권30까지 4권을 1책으로 묶은 목판본이다. 

    판각이 비교적 정교하고 인쇄가 매우 깨끗하여 원판본(元板本)의 특징이 잘 나타나고 있는 우리나라에서는 최초의 번각판((飜刻板)이다. 

    훈민정음기념사업회가 소장한 <고금운회거요>

    최형석 관장이 제공하여 사단법인 훈민정음기념사업회가 소장한 <고금운회거요>(사진 참조)는 국립박물관에 소장된 보물과 동일 연대로 추정되는 목판본으로 현재까지 국내에서 발견된 적이 없는 1권으로 서문의 첫 줄에 [금성박씨회무 서화보]라는 박회무(朴檜茂 1575~1666)의 소장인과 [규장각소장]인이 찍혀있다.
  • 글쓴날 : [23-05-31 12:23]
    • 김신근 기자[ms0818j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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