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화유산 ‘월인석보’ 옥책(玉冊) 언론 공개
  • 세종29년 388매 수옥옥판을 연마해 사경체로 각자한 유물


  • - 월인석보, ‘세조 아닌 세종 때 편찬’으로 바로 잡아야

    지난 3월 22일은 <월인석보>가 간행된 날이다. 
    그런 가운데 월인석보 옥책 전 12권을 최초로 공개하는 전시와 학술행사를 지난 2월 16일 한국 프레스센터에서 개최했다.

    월인석보(月印釋譜)는 월인천강지곡과 석보상절을 합하여 1459년에 간행한 목판본 불교 서적이다. 초간본 10권 8 책과 중간본 4권 4 책이 보물 제745호로 지정되었으며 초간본 2권 2책이 보물 제935호로 지정돼 있다. 

    이날 공개된 월인석보 옥책 전 12권(券)은 수작업으로 옥 조각을 엮어 만든 총 364개의 옥편(玉片)에 각수된 것으로 옥봉 24개와 함께 고대 방법으로 제작된 것으로 판명되었고 옥편의 크기는 가로 4.5㎝, 세로 28㎝, 두께 0.8㎝이다.

    우리나라 서지학계 원로인 정광 고려대 명예교수는 조선 세조 때 편찬된 것으로 알려진 보물 제745호 월인석보가 정통 12년 즉 세종 29년(1447년)의 제작연대 추정의 월인석보 옥책이 발견됨으로 학계가 크게 동요될 소지가 있다고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공개된 월인석보
    공개된 월인석보

    ● 불교대장경 ‘월인석보’는 세조때 아닌 세종때 발간

    한편, 정광 교수는 보물 제745호 ‘월인석보(月印釋譜)’가 세조때가 아닌 세종 28년(1446년) 10월 간행됐다고 주장했다. 

    정 교수에 따르면 석가의 일대기를 다룬 불교대장경인 월인석보는 ‘석보상절(釋譜詳節)’과 ‘월인천강지곡(月印千江之曲)’을 합쳐 편집한 것으로 월인석보 제 1권 첫머리에 ‘훈민정음’의 해설을 한자가 아닌 언문으로 다룬 언해본을 첨부했다. 월인석보가 나온 지 9개월여가 지난 세종 29년 7월에 석보상절과 월인천강지곡의 원본이 간행됐다.

    정 교수는 “세종 28년 9월 훈민정음 해설서를 한문인 ‘해례본’으로 발행하자 최만리 등의 학자들의 언문 반대 상소가 빗발쳤다”면서 “이를 무마하고 백성들에게 훈민정음을 널리 알리고자 한자 대신 쉬운 언문으로 언해본을 만들어 월인석보에 첨부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월인석보라는 불경에 훈민정음 해설서를 첨부함으로써 훈민정음 창제에 반대하는 명나라와 유신의 반대를 피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세종은 1446년 부인인 소헌왕후가 승하하자 명복을 빌기 위해 둘째 아들 수양대군(세조)을 시켜 석보상절을 짓게 했고, 세종도 석가의 공덕을 찬양하는 노래를 지어 월인천강지곡이라고 이름붙였다.

    그동안 석보상절과 월인천강지곡은 세종 때 간행됐지만 이들을 합편한 월인석보는 세조 5년(1459년)에 처음 간행됐다는 것이 학계 정설이었다. 하지만 정 교수는 “월인석보가 세조 때 나왔다면 거기에 들어있는 훈민정음 언해본으로 인해 새 문자를 반포한 것은 세종이 아니라 세조가 된다”며 “세조가 간행한 것은 월인석보의 신편이고, 구편은 세종 때 나온 것이 맞다”고 강조했다. 정 교수는 “신편 월인석보 제 1권에 실린 ‘어제(御製)월인석보서’에서 자신이 간행한 월인석보는 신편이고, 별도로 세종이 간행한 구권(舊卷)이 있었음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고 덧붙였다.

    정 교수에 따르면 구권 월인석보는 ‘어제왈(御製曰)’, ‘왕이 직접 쓴 글에 따르면’으로 시작하는데 이는 세종을 의미하는 만큼 세조 때 나온 신편 월인석보에는 ‘어제왈’을 붙여 세조가 훈민정음을 창제한 것으로 보일 수 없었다. 따라서 신편에는 구권의 ‘어제왈’ 부분을 들어내고 실었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 그동안 발견된적 없는 보물 월인석보 옥책(玉冊)

    이번에 공개된 월인석보(月印釋譜) 옥책(玉冊)은 明 정통 12년, 즉 세종 29년(1447년)이 제작연대로 추정되며, 그동안 발견된 적 없는 유일무이한 보물이다. 월인석보 옥책은 조선 세종대에 불경의 간행, 훈민정음 반포를 재고하게 되는 중요한 자료로 주목받는다.

    월인석보 옥책은 옥봉 24개와 겉표지에 해당하는 ‘월인석보’ 옥판 12개와 엽수(葉數) 표시가 들어있는 옥판 352개다. 여기에 속표지로 엽수를 붙인 ‘월인천강지곡 석보상절(月印千江之曲 釋譜詳節)’의 옥판도 12개 포함돼 있다.

    그동안 천순(天順) 3년, 세조 5년(1459)에 초간본이 간행된 것으로 알려졌으나, 세종 29년(1447년)에 개성(開城) 불일사(佛日寺)에서 제작된 것으로 밝혀졌다. 이번에 공개된 옥책에는 정통 12년(세종 29년)을 표기하고 있어 세조 때보다 12년 앞선 것으로 알려졌다.

    옥책의 마지막 권인 제12권 말미(29판)에 ‘佛日寺 正統 十二年 終(불일사 정통 12년 종)’이란 권미 간기(卷尾 刊記)가 보인다. 이를 통해 세종 29년(1447년)에 간행된 옥책임을 알 수 있다. 1446년 세종대왕의 부인 소헌왕후가 세상을 떠나자 수양대군(首陽大君)에게 명해 ‘월인석보 옥책’을 언문으로 만들어 불일사 사찰에 봉헌한 것으로 추정된다. 
    월인석보 공개행사
    월인석보 공개행사

    이에 월석의 간행은 학계에서 인정하고 있는 천순(天順) 3년(1459)이 아닌 정통 12년(1447)이 돼야 한다는 설명이다. 

    정광 고려대학교 명예교수는 “옥책의 발견은 ‘월인석보’의 간행과 훈민정음의 반포에 대한 기존의 학설을 다시 논의해야 하는 획기적인 일이다”라고 주장했다.

    김승빈 포항공대 교수는 “산화상태와 기물의 표면변화 상태로 볼 때 상당히 많은 세월의 풍파를 겪었음이 관찰된다”며, “문물양자연대측정기의 5차례 검측결과는 AD1447년경으로 확인된다”라고 연구결과를 밝혔다. ‘월인석보 옥판’은 과학적으로 검증된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훈민정음 원본이라는 것이다. 과연 역사 기록이 개선될지 주목된다. 
  • 글쓴날 : [23-04-26 12:06]
    • 김신근 기자[ms0818j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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