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학생기자-시선] 모두가 기억해야 할 ‘제주 4.3’
  • 김세희 학생기자(제주서중2)



  • 많은 오름과 계절마다 색달라지는 한라산, 그리고 특산물 감귤로 유명해 매년 수많은 관광객이 찾아오는 제주도에도 아픈 역사 4.3이 있다. 대체 4.3이란 무엇인지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자.

    1947년 3월 1일 ‘제28주년 3.1절 기념대회’가 전국에서 열리게 되고, 제주에서는 북국민초등학교(현재의 북초등학교)에서 3만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참가하게 되었다. 
    제대로 된 나라를 만들자는 참가자들의 시위행렬이 관덕정까지 이어졌고, 이때 어린 아이가 경찰의 말발굽에 치여 다치는 사고가 발생한다. 이에 분노한 시민들은 경찰을 향해 돌을 던졌고, 폭동이 일어났다고 간주한 경찰들이 시민들에게 총을 쏘아 6명이 숨지고, 8명이 중경상을 입는 사건이 발생한다.

    이를 시작으로 제주주민들은 경찰에게 사과를 요구했고, 이에 항의하여 여러 기관단체에 속한 4만여 명이 총파업에 들어간다. 이런 총파업에 미국은 제주도를 ‘붉은 섬’ 이라 하며 본토에서 경찰이 파견됐고, 서북청년회 단원들이 제주에 와서 학생이든 교사든, 공무원이든 상인이든 전부 ‘빨갱이’로 간주하며 1년동안 2,500명을 잡아들였다.
    제주 43 희생자 현황
    제주 4.3 희생자 현황
    남로당 제주도당은 5.10 단독선거 반대투쟁과 결합해 1948년 4월 3일 새벽 2시 한라산 기슭 오름마다 봉화를 올리며 제주도위원회가 주도한 무장봉기가 시작되었다. 무장대는 12개 경찰서를 습격하고 서북청년회단원의 집 등을 지목해 습격했다. 이 사건으로 제주도에 들어온 군부대와 서북청년회, 경찰들은 무장대를 잡겠다는 명목하에 어른이든 아이든 노인이든 여성이든 상관없이 마구잡이로 때려 죽였다. 
    1954년 9월 1일까지 7년 7개월 동안 3만명 가량의 희생자를 남기게 되었다.

    현재까지도 유해가 다 발굴되지 않아 희생자 수는 계속 늘어나고 있으며, 희생자들에 대한 무죄판결 선고와 희생자증 및 유족증을 발급하는 등의 진상규명이 이어지고 있다.

    지금까지 제주도의 아픈역사 ‘4.3’에 대해 알아보았다. 앞으로도 꾸준한 진상규명이 이루어지길 바라며, 앞으로도 '제주 4.3'이 계속 기억되길 희망한다.
  • 글쓴날 : [24-04-03 11:29]
    • 김신근 기자[ms0818j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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